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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만수 전감독이 올리는 부탁의 글입니다.
작성자 사무국 조회 3165
작성일 2015.01.05 오후 6:28:32
첨부파일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하고 있는 이만수 전감독으로 부터 며칠전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라오스가 여러 가지로 환경이 미흡하다보니 선수들이 쓸 중고글러브가 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해서 중고글러브를 기증하실수 있는 분이나 저렴한 가격에 팔고자하는 분께서는 사무국으로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글은 이만수 전감독이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하게된 동기부터 과정까지 소개한 박동희기자의 글을 참고로 떠온 것입니다.

편안히 보시고 부담없이 도움을 줄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사무국 전화 053-358-6111



프로야구 감독에서 야구 저개발국 야구 보급가로 변신한 이만수 전 SK 감독

안녕하세요. 이만수 전(前) SK 감독입니다. 아니 ‘야구인’ 이만수입니다.
SK를 떠난 지가 언젠데 저도 모르게 ‘전 SK 감독’이라는 말을 쓰고 말았네요^^

그만큼 SK에 대한 정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요즘 SK를 보면 최창원 구단주님의 전폭적인 지원과 김용희 신임 감독님의 리더십 그리고 선수들의 부단한 노력과 무엇보다 팬 여러분의 성원으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더 나은 팀으로 발전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앞으로도 늘 SK와 전체 프로야구계에 행운이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아내가 들려준 조언 "여보, 제게 했던 약속을 잊으셨어요?"

저는 SK 감독에서 물러나고서 현재 ‘라오스 야구 보급’에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제 소식을 접하셨는지 많은 분께서 응원과 격려를 들려주고 계신데요.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과 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처음부터 야구 저개발국에 야구를 보급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생각만 품고 있었지요.
그러다 지난 3월 라오스에 사는 지인분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 지인분은 ‘이곳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다.
젊은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을 만한 환경이 제대로 조성돼 있지 않다.
이 젊은이들이 꿈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건강과 협동정신을 배울 수 있는 매개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야구가 그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 지인분이 직접 한국에 오셨을 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그러시더군요.
“라오스에 다른 스포츠 종목은 거의 다 있는데 야구만 없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괜한 책임감 같은 게 들더군요.
그 뒤 지인분과 주기적으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야구로부터 받은 사랑을 야구를 통해 돌려주자’는 생각과 ‘지도자 은퇴 후, 야구 보급에 나서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제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지인분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한 달 뒤 바로 1천만 원 상당의 야구용품을 보내드렸습니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려면 기본 장비와 용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제가 직접 방문해 야구지도를 할 순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SK 감독으로 필드를 지휘하고 있었고, 시즌 중 자릴 비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마음 한편으로 물품만 보낸 것 같아 죄송하더군요.
다행히 제가 보내드린 장비와 용품으로 라오스 젊은이들이 야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나게 야구를 하고 있을 라오스 청년들을 생각하니 제 마음이 다 들뜨더군요^^
그러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SK가 4강 진입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SK 팬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도 4강 진입에 실패하면서 정든 구단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제가 생각한 게 뭔지 아세요?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라오스에 대한 생각보단 계속 야구를 해야겠다는 일념밖엔 없었습니다.
야구계로 복귀하기 전, 그동안 고생한 아내와 함께 동유럽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요.
정말이지 제 아내는 못난 남편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 흔한 여행 한번 제대로 다녀오지 못했어요.
전 아내가 동유럽 여행 계획을 듣고 좋아할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제 아내가 들려준 말은 “당신에게 실망했어요”였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뭘 실망했다는 소리에요?”하고 물었더니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이 저한테 야구 감독에서 물러나면 라오스로 야구봉사를 떠나겠다고 하셨잖아요.
SK 감독 시절에도 언론 인터뷰마다 ‘여기서 물러나면 봉사활동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동유럽 여행은 언제든 갈 수 있지만, 봉사활동은 마음먹고 가지 않으면 언제 갈 수 있을지 몰라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정말 절 위해서라면 여행 계획 취소하시고, 라오스 먼저 갔다 오세요.”
아내의 진심어린 조언을 듣고 라오스 지인분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11월에 가겠다”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도 솔직히 두려운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라오스에 내가 간다고 바뀌는 게 있을까?
사회주의국가인 라오스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거기다 전 56년 동안 일본을 제외하면 아시아 어느 나라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불면의 밤을 지새운 게 사실입니다.

일단 라오스에 전화까지 했는데 이제 와 안 간다는 건 신의의 문제일 것 같더군요.
가능한 빨리 다녀오려고 했는데 반드시 참석해야 할 행사 때문에 라오스행을 다소 늦춰야 했습니다.
그 행사가 뭐였느냐고요?
제 친구인 고 최동원 전 한화 감독을 기리는 ‘제1회 최동원상 시상식’이었습니다.
고 최 감독을 좋아했던 야구팬이 많으실 줄로 압니다.
지금도 많은 분이 최 감독을 기억하실 텐데요.
야구팬 여러분께는 당대 최고의 스타로 기억되실지 몰라도 제겐 야구를 떠나 정말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와 현역 시절 함께 기뻐하고, 웃고, 울고, 슬퍼했던 날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특히나 최 감독이 암 투병 중일 때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뛰어갔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철완’ 소릴 듣던 우리 동원이가 병실에 누워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 동원이 볼을 만지며 ‘엉엉’ 우는 게 전부였습니다.
제가 한참을 울고 있으니까 동원이도 눈을 떠서 떨리는 손으로 제 볼을 만져주더군요.
다음날에도 병실을 찾아가 동원이 얼굴을 한참 보다가 야구장으로 돌아왔는데요.
그 다음 날 다시 병원에 가서 친구 얼굴을 보려고 했는데 동원이가···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11월 11일 부산에서 열리는 ‘최동원상 시상식’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만 했습니다. 다녀오니 역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음날인 12일 라오스행 비행기에 타는데···. 참 신기한 게 이전의 두려움이 ‘싹’ 사라지고 없더군요.
제 영원한 친구 동원이가 하늘나라에서 못난 친구가 가는 길에 용기를 심어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오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두려움보단 기대감이 앞서더군요.



안녕하세요. ‘야구인’ 이만수입니다.
오늘 창밖을 바라보니 하얀 눈이 내리고 있더군요. 감독 시절이었으면 ‘구장 그라운드가 다 눈으로 덮이면 우리 선수들 어떻게 훈련하지.’ 했겠습니다만, 지금은 꽁꽁 언 도로에서 먼 길을 가실 분들과 조심조심 눈길을 걸어가실 분들이 걱정되더군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텐데요. 꼭 안전운전, 안전보행하시길 바라겠습니다.
1편에서 라오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앞섰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정말 ‘영원한 친구’ 고 최동원 감독이 하늘나라에서 못난 친구에게 용기를 심어줬는지 라오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두려움이 ‘싹’ 사라졌습니다.
되레 이상하리 만치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더군요.
그 좋은 예감을 가슴속에 품고, 절 마중 나오신 지인분을 따라 ‘라오 브라더스’ 팀이 운동 중인 야구장으로 향했습니다. 동남아시아 방문이 난생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차창 밖을 바라봤는데요.
한국의 1960·70년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오랜 내전과 혼란이 몰고온 가난과 궁핍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농부, 근로자분들을 보면서 ‘시간이 좀 지나면 대한민국처럼 라오스도 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겠구나’하는 확신 같은 게 들더군요.
옛날 우리 세대가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참 라오스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차가 야구장 앞에 멈췄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는데. 제 입에서 그만 “아이고~”하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제가 내린 곳은 야구장이 아니라 허름한 축구장이었습니다.
축구장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할 만큼 골대 2개가 설치된 그냥 잔디밭이었습니다.
여기서 야구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더군요.
솔직히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을 봤을 땐 더 겁이 났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체격조건이 무척 뛰어납니다. 중학교 학생선수만 돼도 대부분 키가 170cm 이상이지요. 체중도 60kg 이상이고요. 프로 선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은 반대였습니다.
대부분 체구가 왜소했고, 한눈에 ‘딱’ 봐도 체력이 달려 보였습니다.
동남아시아에 야구를 보급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왔지만, ‘과연 이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들더군요.
‘야구’의 ‘야’자도 모를 것 같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눌 때까지도 솔직히 전 걱정과 우려로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짧았다는 걸 1시간도 안 돼 깨달았습니다.
캐치볼을 비롯한 기본 훈련을 지켜보니 ‘야구’의 ‘야’자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특히나 기본기가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지인분에게 여쭤봤더니 자원봉사자 6분이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을 돕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6명의 자원봉사자 가운덴 한국국제협력단(이하 코이카ㆍKOICA)에서 파견한 해외봉사단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야구를 하셨는지 라오 브라더스 훈련에 큰 도움을 주고 계셨습니다.
이 먼 곳에서 나눔의 정신으로 봉사활동에 매진하시는 분들을 보니 한편으론 자랑스럽기도 하고, 더 일찍 오지 못한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걱정과 우려는 날아가고, 또 한 번 ‘잘해야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선수들의 표정이었습니다.
선수들 모두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있는데도 웃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땐 아무리 훈련이 고되고, 힘들어도 훈련장에서만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는데요.
힘들면 힘들수록 재밌고, 즐겁게 운동하려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의 표정에선 웃음뿐만 아니라 즐거움의 감정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을 때 지인분이 그러시더군요.
“라오스는 오랫동안 사회주의국가였고, 외국과의 교류도 무척 제한적이었던 나라라,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무척 강하다”고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제 별명이 뭡니까? 헐크 아닙니까^^.
선수들 시각에선 제가 낯선 외국인일 게 분명했습니다.
당연히 마음의 빗장을 먼저 열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전 헐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괴력을 발휘하는 헐크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먼저 안아주는 따뜻한 헐크가 되기로 했습니다.
선수들의 훈련을 도와주며 칭찬도 하고, 손뼉도 치고, 포옹도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해하더군요.
눈빛을 반짝이며 경계하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세상을 살면서 배운 삶의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내 작은 배려와 관심이 모든 화해의 시작이라는 것’과 ‘내게로 타인이 오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타인에게 다가갈 때 관계가 성립한다.’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좋은 친구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라오 브라더스와의 첫 훈련을 마쳤습니다.



손님상에 오르기 전, 아들들에게 최고의 고기를 주셨던 어머니

라오 브라더스와 의미 있는 첫 훈련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방 불을 끄고 나자 커다란 암초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모기였습니다.
라오스와 한국의 시차가 2시간 정도라, 시차 적응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원체 모기가 많다 보니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문을 닫고, 모기향을 피워도 모기가 어디서 들어왔는지 제 귓가에서 ‘윙윙’ 소릴 내며 날아다니더군요.
거기다 어째서 다리만 무는지 밤새 다리를 긁느라 잠을 설쳤습니다.
모기와 씨름하다 잠에서 깨 세수를 하려는데 얼굴이며 목, 팔, 다리가 온통 벌겋게 부어있더군요.
그래도 이때만 해도 모기는 제가 야구봉사를 하는 데 큰 지장을 줄 만한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죠. 하지만, 귀국했을 때 고열에 시달리면서 제가 뎅기열에 걸렸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네, 라오스에서 모기에 물린 게 화근이 된 겁니다. 꽤 고생했습니다만, 라오스에서 봉사활동 중 발병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과의 훈련 이틀째를 맞아 제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뭘 입고 운동장에 나가야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날은 라오스에 도착해 얼떨결에 구장을 찾은 것이라, 복장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요.
둘째 날은 라오 브라더스가 저와 함께하는 실질적인 훈련 첫날이라, 복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독 시절 편하게 입던 SK 유니폼을 준비하긴 했으나, 이미 SK를 떠난 마당에 그 옷을 입는 건 전(前) 소속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유니폼을 입자니 라오스의 반미(反美) 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지난해 KBO 올스타전 때 착용했던 유니폼을 입기로 했습니다. 가장 무난하더군요.^^
그때 재미난 감정이 들었는데요. 올스타 유니폼을 입고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과 훈련하니 마치 제가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 무거운 책임이 느껴지더군요.
누가 제 어깨에 짐을 얹어준 것도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간외교관이 된 것 같아 매사 더 조심하자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실향민이셨던 아버지는 직업군인의 길을 걸으셨기에 늘 박봉이었습니다. 야구선수였던 저와 테니스 선수였던 동생(이용수)의 뒷바라지를 하기엔 역부족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고깃집을 하시며 우리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해주셨는데요.
고깃집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힘든 고깃집을 운영하시면서 묵묵히 우리 형제들을 뒷바라지해주셨습니다. 특히나 기억나는 게 있는데요.
보통 고깃집을 운영하면 손님들에게 팔고 남은 고기를 가족들에게 먹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제 어머니는 그 반대셨습니다. 손님들에게 고기를 팔기 전, 가장 좋은 고기를 저와 동생에게 먼저 주셨습니다. 아들들에게 최고의 고기를 먹이고, 그 고기를 먹은 우리 형제가 건강하게 운동하길 바라셨던 것이지요.
어머니의 이러한 지극정성이 있었기에 저와 동생이 나름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을 보면서 전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짬을 내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말자. 여유가 있어 봉사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모든 여유를 야구 재능 기부에 쏟아붓자. 과거 어머니가 최고의 고기를 우리 형제에게 먼저 주셨듯이 이제 내 능력 가운데 최고의 능력과 정성을 라오스 야구 발전을 위해 쓰자’고요.

KBO 올스타 유니폼을 입고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과 다시 만나니 첫날과 달리 선수들이 웃으면서 반갑게 절 맞아주더군요. 그때 다시 깨달은 겁니다만, 글자와 말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아닌 듯합니다. 때론 몸에서 흘리는 땀과 무언(無言)의 동료애가 사람간의 친밀도를 높이고, 신뢰를 증대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구라는 스포츠를 '만국 공용어'라 부르는 것이겠지만요.



[2편에 이어]

안녕하세요. ‘야구인’ 이만수입니다.
야구 시즌이 끝나 많은 분이 ‘야구 갈증’에 목이 타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필드에서 생활하다 보니 저도 겨울이면 야구 갈증에 목이 마르곤 합니다. 사회인 야구나 동호인 야구를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지금 같은 비시즌 기간에 더 열심히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리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도 주말에 캐치볼이라도 하신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몸과 마음이 바위처럼 단단해지는 걸 느끼시게 될 겁니다.^^
오늘은 제가 라오스에서 작은 도움을 주고 있는 ‘라오 브라더스’란 팀을 소개할까 합니다. 라오 브라더스는 라오스 최초의 야구팀이자 라오스 야구발전의 씨앗이 될 야구단입니다.
지난해 11월 지인분(제인내 씨)께서 이 팀을 창단하셨는데요. 지인분께선 “협동심과 단결력 그리고 건강을 증대시키는 데 야구만 한 스포츠가 없다는 생각으로 라오 브라더스를 창단했다”고 하셨습니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도 대표적인 야구 불모지인 데다 원체 야구 저변이 빈약한 곳이라, 세계 야구 보급에 앞장섰던 일본 야구인들도 번번이 야구팀 창단에 실패했던 곳인데요. 그런 야구 황무지에 혼자 힘으로 야구의 씨앗을 뿌린 지인분이 그래서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창단 때만 해도 팀원은 10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10명이면 자체 경기도 하기 힘든 숫자지요. 그러다 팀원이 15명으로 늘고, 제가 다녀온 뒤로는 3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팀원 대부분은 대학생들입니다. 호기심 차원에서 라오 브라더스에 가입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팀원 대부분이 학생이다 보니 평일 훈련은 어렵고, 주말에 몰아서 훈련하는데요. 그 때문인지 아직 실력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사회인야구 3부 선수들보다 실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실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훈련에 임하는 열정과 노력은 프로 선수를 능가하는데요. 특히나 기술 습득이 무척 빠릅니다.
팀원들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실력이 빨리 늘 수 있나’하고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역시 열정과 노력은 그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이 후배 선수들에게까지 이어지고, 라오스에 진정한 야구의 꽃이 피려면 가장 중요한 건 연속성과 항구성입니다. 라오 브라더스가 단순한 실험이나 일시적 모험으로 끝난다면 라오스에선 영원히 ‘플레이볼!’이란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겁니다.
그걸 염려하셨는지 지인분은 라오 브라더스의 항구적 운영을 위해 현재 ‘야구센터’를 짓고 계십니다. 500평 규모의 땅에 세워지고 있는 ‘야구센터’는 선수들의 실내 연습장으로, 내야 수비 훈련장과 타격훈련을 위한 피칭머신기 3개, 투구훈련을 위한 불펜 투구장 1개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라오스에 아직 야구장이 없고, 비가 내리는 날이 많다 보니 지인분께선 “실내 연습장에서라도 선수들이 야구를 즐기고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야구 센터 건립에 나섰는데요. 안타까운 건 2억 원가량이 소요되는 건립 비용을 거의 전부 지인분께서 혼자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지인분은 ‘야구 센터’ 건립을 위해 이미 소유하고 있던 집을 판 상태입니다. 제가 일부 도움을 드리긴 했으나, 앞으로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게 분명하기에 늘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지인분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되레 “학생선수들이 방학 동안 쾌적한 환경에서 단체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라며 “야구 센터를 2층으로 높여 숙소를 만들겠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지인분을 보며 한국에 야구를 전파해준 필립 질레트를 떠올렸습니다. 선교사 신분으로 ‘척박한 땅’ 조선에 도착한 질레트는 1904년 ‘황성 YMCA 야구단’을 만들었고, 야구 보급에 온 열과 성을 바쳤습니다. 질레트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라오스처럼 야구의 불모지로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랬다면 저 역시 ‘야구인’ 이만수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테고,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번은 지인분이 그러시더군요.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도 어려웠던 시절 세계 각국의 원조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요. “이제 먹고 살만해졌으니 이젠 대한민국이 나서 어려운 나라에 봉사와 지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요. “내가 라오 브라더스에 열정을 쏟아붓는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려웠을 때 받은 은혜를 야구를 통해 되갚고 싶은 것뿐”이라고요.
어쩌면 그래서 지인분과 제가 힘을 합쳐 라오스 야구 보급에 나서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저도 야구로부터 받은 사랑을 야구를 통해 되갚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라오스에서 뎅기열로 꽤 고생했습니다만, 지금껏 야구로부터 받은 사랑을 1% 정도는 야구를 통해 되갚은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야구 센터가 완공되면 라오 브라더스의 항구적 운영엔 청신호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야구장이 건설되지 않으면 라오스 야구는 더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릴 맴돌 것입니다. 아무리 실내 연습장이 훌륭해도 정작 야구 경기는 그라운드에서 하기 때문입니다.
야구장 건설을 위해 지인분과 정말 많이 뛰어다녔는데요. 라오스 유력 인사들과 만나 도움을 청하고, 설득도 했습니다. 많은 분께서 “도와주겠다”는 말씀을 들려주시더군요. 하지만, 몇몇 공무원이 야구장 건설 인·허가와 관련돼 뒷돈을 요구하면서 한동안 무척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1억 원 남짓 소요될 건설 비용은 차치하고, 인·허가 문제를 슬기롭게 푸는 것이야말로 야구장 건설에 가장 큰 관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문제는 계속 노력해 풀어볼 생각입니다.
야구장 건설과 함께 제가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라오스야구협회 창립입니다.
애초 지인분께선 내년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유니버시아드’ 야구 종목에 라오 브라더스를 이끌고 참가할 계획을 세워두고 계셨습니다. 아무래도 국제대회에 참가하면 라오스 정부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라오스 국민 사이에서도 야구가 화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제가 지인분을 설득했습니다. “지금은 너무 이릅니다. 선수들 기량이 어느 정도는 올라와야 국제대회에 참가해도 의미가 있고, 라오스 국민도 자국팀 선수들을 대견하게 생각할 겁니다. 열심히 훈련해서 2, 3년 후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하고 설득했습니다.
지인분께서도 흔쾌히 동감을 표시해주더군요. 따라서 내년 광주유니버시아드엔 라오스 야구팀이 참가하지 못할 듯합니다. 여기엔 현실적 어려움도 숨어 있는데요.

아직 라오스엔 야구협회가 없습니다. 야구협회가 있고, 그 협회가 국제야구연맹(IBAF)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해야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데, 지금은 협회 자체가 없다 보니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조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대한야구협회를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협회를 창립할 수 있을지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는데요. 협회 윤정현 전무이사께서 자기 일처럼 조언해주시고, 챙겨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IBAF에 제출할 가입 관련 영문 서류도 대한야구협회에서 대신 만들어주셨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대한야구협회에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지금까지 흐름만 본다면 라오스 야구협회는 내년 상반기에 창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라오스는 IBAF의 일원이 돼 당당하게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제 지인분께 전화했더니 “12월 28일에 라오 브라더스 입회 공개 테스트를 할 예정”이라고 하시더군요. 몇몇 곳에 공개 테스트 안내 포스터를 붙였는데 어디서 그걸 봤는지 연락이 쇄도하고 있다며 놀라워하시더군요.
전화를 끊고 ‘생각보다 빨리 라오스에 야구가 뿌리내릴 것 같다’는 희망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지금보다 몇 배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군요.
저는 ‘라오스의 질레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라오스 야구 보급을 통해 제 야구 이력을 빛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습니다. 앞으로 준비 중인 야구 재능 기부를 프로야구 컴백의 기회로 삼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전 그저 질레트를 도와 한국야구에 씨앗을 뿌리고도 이름 없이 사라져간 동조자들처럼 지인분을 도와 야구 저개발국에 저와 여러분이 그토록 사랑하는 야구를 전파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야구가 진정한 전 세계인의 놀이가 되고, 소통과 화합의 매개체가 되리라 확신할 따름입니다.
야구가 언제까지 몇몇 나라의 인기 종목에만 그친다면 지금처럼 야구는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돼 ‘그들만의 스포츠’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야구인들이 질레트의 다짐을 새기고, 그것을 실천하는 길밖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라오스에서 야구 보급에 전념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SK 최창원 구단주님과 야구 모자와 티셔츠를 무상으로 전달해주겠다고 약속한 넥센 히어로즈 같은 선의의 후원자분들을 위해서도 전 야구 보급과 재능 기부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게 ‘야구인’ 이만수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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