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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신문칼럼-제이미브라운 편
작성자 최종문 조회 1730
작성일 2007.05.18 오후 7: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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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브라운의 수난사

여자를 갈대에 비유 했던가
그러나 낯선 땅에서 중심을 잃고 바닥을 헤멜땐 누구라도 갈대가 될게다.
전력을 다한 노력과는 달리 해도해도 결과가 엇갈리기만 하는 경우에는 아무리 강한 남자라도 하늘을 원망하고 괴로워 울고 싶지 않을까?
제이미 브라운이 그랬다.
미시시피에서 태어나 자란 브라운이 클리블랜드(싱글A)에 입단한 1997년과 그이듬해엔
최고구속 95마일(152km)을 기록한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였다.
그러나 스피드에만 의존한 그의 피칭은 제구력이 들쑥날쑥해 더블A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무리한 피칭으로 팔꿈치에 이상이 생긴 2001년 브라운은 마침내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다.
대부분의 경우 인대 접합수술 후엔 더 강한 스피드가 생성되지만 브라운은 달랐다.
스피드는 140km중반에 머물렀지만 대신 예전보다 정교한 컨트롤이 생겼다.
재활운동을 하는 동안 힘보다는 두뇌피칭의 묘를 깨우친 브라운은 투구의 각도변화가 타자들의 타격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판단. 스리쿼터형으로 폼을 변경해 다양한 각도의 변화구를 혼합하면서 경기운영 능력을 향샹시켰다. 덕분에 2003년도에는 트리플A로 승격했고 2004년 후반엔 메이저리그 에도 올랐다. 가능성을 인정받은 브라운은 한신타이거즈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청운의 꿈을 안고 무대를 일본으로 옮겼다.
그러나 순박한 청년을 마구 뒤흔든 운명적인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낯선 투구폼 탓인지 첫 한달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몇차례 상대하면서 실점이 늘고 조금씩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선발 등판 일정이 늘어졌다.
불일정한 등판간격으로 리듬은 자연스레 흐트려졌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그러다 2주만에 돌아온 선발경기를 엉망으로 망친 그날 브라운은 2군으로 쫒기듯이 밀려났다.
설상가상으로 2군에서는 다소 특이한 투구폼의 수정을 제의했고 반신반의 하면서 따르다
오히려 자기 감각을 잃고 말았다. 일본에 온지 5개월만에 브라운은 혼란에 빠져 있었고 시즌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선동열 감독의 추천을 받고 삼성라이온즈로 오게된 브라운은 이번에야 말로
새로운 환경에서 잘해 보리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두가지를 주문했다.
자신의 투구폼에 손대지 말것과 일정한 등판 간격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6시즌이 시작되자 시련의 복병은 뜻하지 않는 곳에 숨어있었다.
일정한 로테이션으로 적응이 될만하면 비가 내려 경기가 취소 되는 것이었다.
경험이 많은 선수에게는 별 문제가 안되겠지만 브라운에게는 등판간격이 투구감각을 위해
중요한 문제가 됐다.
더구나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했던 브라운에게는 일본에서의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스스로 그 재발을 우려했다.
6월이 시작되면서 성적은 3승5패에 머물러 있었고 대신 레인(rain)맨이라는 별명만 붙어 있었다.
퇴출문제도 거론되면서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위축된 브라운은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6월17일 sk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부진했던 그날 브라운은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있었다.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송창근 차장(통역)이 브라운을 데리고 간곳은 호텔 앞 노래방이었다.
방대신에 무대가 있고 오픈된 시설에 브라운이 주저했지만 송차장은 맘껏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브라운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망설이던 브라운에게 화기가 돌자 송차장이 한마디 건넸다.
"경우 몇십명이 모인 곳에서 노래도 못한다면 어떻게 수많은 관중 앞에서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던 브라운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신청한 곳은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라는 곡이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불렀던 브라운이 그날 부른 노래는 모두 6곡.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는 bed of roses(장미로 덮힌 침대)라는 곡이었는데 브라운은 bed of nails(못으로 덮힌 침대)로 가사를 바꿔 불렀다,
두번에 걸쳐 이국땅에 와서 겪고 있는 처참한 자기 심정을 대변하는 노래를 눈물과 곁들여
불렀지만 그날 많은 손님들 앞에서 브라운은 한가지 약속을 했다.
keep on keeping on(나는 전진해 나간다)이라고
그 이후 달라진 브라운은 마침내 10승을 넘어 서면서 믿음을 주는 투수로 변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그의 락카앞에 붙여있는 keep on keeping on을 매일 되새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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