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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신문칼럼-권혁의 키의 히스토리 편
작성자 최종문 조회 1762
작성일 2007.05.18 오후 7: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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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의 “키의 히스토리”

2004년 10월 16일. 잠실구장의 검은 전광판에 노랗게 세숫자가 새겨지는 순간 일제히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누구나 던지고 싶어도 던질수 없는 156km 라는 숫자였다.
그러나 이 꿈의 스피드는 불과 5년 전 만해도 갈 곳 없이 막연하게 야구를 꿈꾸던 한 청소년이 쓸쓸히 동네 놀이터에서 혼자 땅에 그리곤 했던 바로 꿈의 그 숫자였다.
성광중학교에 진학해 2학년이 된 권혁은 다른 투수에 비해 키가 작은 소년이었다.
160cm 였던 수창초등학교 시절의 키에서 더 자라지 않았다.
가정형편도 어려운데다 작은 키로 힘이 실리지 않은 투구에 스스로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권혁은 2학년 중반 어느날 야구를 그만 두고 말았다.
학업으로 돌아서 공부에 전념했지만 늦게 시작한 탓에 경상공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선반이나 용접등의 기술공부는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1학년 초반부터 키가 조금씩 자라더니 중반에는 어느새 180cm로 훌쩍 커 버린 것이었다.
왜 진작에 키가 크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고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힘든 집안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춘기의 본격적인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됐고 건성으로 다니던 학교에서 돌아와 동네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권혁은 태어나서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었일까? 고 생각하다가 수창초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나서 우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커져버진 자신의 덩치가 그때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막연하게나마 다시 한번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하고 개인훈련을 시작할 무렵 지인을 통해 당시 경북고 감독에서 물러나 잠시 쉬고있던 서석진 감독을 소개 받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님이 홀로 꾸려가는 가정 형편은 다시 야구부로 들어가기에는 벅차기만 했다.
그렇게 개인훈련을 하면서 2학년 중반에는 키가 186cm까지 자랐고 막연한 꿈으로 버텼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1999년 6월 대구 지산중학교의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한 아파트의 창 곁에서 오대석 감독(당시 포철공고 감독)은 오랫동안 운동장 한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 젊은 학생이 공을 던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우연히 만났다.
포철공고는 권혁에게는 은인같은 존재였다. 학교의 지원이 많아 돈이 별로 들지 않았고 우연을 인연으로 생각한 오감독의 배려로 빠르게 몸을 만들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2학년 말 처음 경기에 등판한 권혁의 투구는 137km 기록했다.
키가 187cm로 자란 3학년 때는 평균구속 142km를 기록하면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빠른 스피드를 만들어낸 선수로 주목 받았고 그해 삼성라이온즈의 1차지명을 받았다.
프로에 와서도 놀랍게도 키는 계속 자랐다.
2년새 5cm가 더 자라나 191cm로 마감한 권혁의 “키의 히스토리”는 플레이오프 3차전의 수호신으로 등장해 156km라는 꿈의 스피드를 탄생시키고는 사라졌다.
9회말 투아웃째. 6회말에 등판해 150km를 상회하는 강속구로 11타자를 연속으로 처리하면서 한점의 리드를 지키고 플레이오프의 향방을 삼성쪽으로 기울게 한 약관의 투수에게 그날 3만관중의 찬사는 마치 인간승리의 축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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